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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유환(養虎遺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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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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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陣)나라 말기에 천하를 둘로 나누어 한(漢)의 유방과 초(楚)의 항우가 서로 다투었다. '홍문(鴻門)의 회(會)'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유방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항우가 초나라의 의제(義帝)를 시역했다는 말을 듣자 그를 위해 상복을 입고 역적을 주벌한다는 명목으로 항우 정토를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싸움은 한동안 항우측이 우세했으나 차츰 형세가 역전되어 유방측이 유리해졌다. 유방은 이때를 적당한 시기라고 보고 전에 사로 잡힌 부친 태공(太公)과 부인 여씨(呂氏:뒤의 여태후)를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항우는 천하를 양분하여 홍구로부터 그 서쪽을 한의 영토로, 동쪽을 초의 영토로 한다는 조약을 맺고 태공과 여씨를 풀어 주었다. 강화를 맺은 항우는 약속대로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유방도 서쪽으로 철수하려고 하자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유방을 설득했다.

"한은 이제 막 천하의 태반을 소유하고, 제후와 인심이 모두 편들고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초의 군병은 지쳤고 식량도 모자라며 민심도 이반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천하를 탈취해야만 합니다. 지금 항왕(項王)을 동쪽으로 돌아가데 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화근을 남기는 것(養虎遺患)이 됩니다."

유방도 이 말에 수긍하고 즉시 항우를 추격했다. 항우는 유방이 조약을 파기한 데 대해 분노했지만, 우세한 한군에 밀려 남하했다. 마침내 항우는 해하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고 오강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하지 못하고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출전]《史記》<項羽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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